바보 인생
바보 인생
기억을 잃은 바보와 슬픔 속에 사는 여자의 이야기
그날이다. 그날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온다. 누군가가 내 곁으로 온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끌려고 한다. 나는 그의 손에 구속된 나의 손을 황급히 빼어 낸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는 길을 미친 듯 달려간다. 달리고 달린다. 그가 나를 찾지 못하게 미친 듯 달린다. 나는 어느 버스표지판 앞에 멈춰 선다. 누군가 있다. 아니 그녀가 서 있다. 아니 그녀가 아니다. 흐린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그녀가 아니다. 나는 이내 시무룩해져 그 자리에 쓰러진다. 내 눈가에 이내 눈물이 흘러나온다. 내가 찾는 그녀가 아닌 그녀가 나에게 “어디 아프세요.” 라고 묻는다. 나는 멀뚱히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는 내가 찾는 그녀는 아니지만, 그녀만큼 아름다웠다. 그녀처럼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고 그녀처럼 인상이 밝았고 그녀처럼 눈이 맑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름을 묻는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자신에 이름이 김은지라고 말한다. 내가 찾던 그녀의 이름과 다르다. 나는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흘러나온다. 가슴 깊이 켕겨오는 슬픔이 물밀듯 내 눈으로 흘러나온다. 나는 재빨리 눈물을 더러운 소매로 닦아낸다. 그리고 그녀에게 같이 동행하여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나와 그녀는 어떤 버스에 올라탄다. 그녀는 나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내 이름을 곰곰이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주위를 둘러본다. 버스 창문에 낙서로 영원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나는 그녀에게 내 이름을 내가 찾는 그녀의 김이라는 성을 사용하여 내 이름을 김영원이라고 말한다. 잠시 동안에 침묵이 이어졌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나와 그녀는 버스에서 내린다. 나는 그녀를 따라 걷는다. 그녀의 전화기가 울린다. 그녀는 황급히 전화를 받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하늘은 맑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맑았고 내가 찾던 그녀가 가르쳐 주던 하늘보다 맑았다. 나는 김은지라는 그녀를 본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눈물로 번진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그녀와 나는 조금 한 공원의 벤치에 앉는다.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어딘가 누워있다. 내 곁에 누군가 누워있다. 그녀가 아닌 그녀 김은지가 누워 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는 그녀를 깨운다. 그녀는 깨어나 나를 끌어안는다.